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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이 헬슬람인 까닭 (펌)

2016.06.02 10:13

atface 조회 수:683

(펌글)

http://cafe.daum.net/Europa/38b2/4131



0. 들어가며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갖는 의의와 유산은 다양한 이슬람 사회에 끼치는 영향의 면에 있어서 부정적인 것에서부터 긍정적인 것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그리고 인간 역사의 많은 사건들이 그렇듯이 대다수의 유산들은 어느 하나라고 확답을 하기 힘들 만큼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인도에서의 이슬람의 확산은 이슬람을 받아들인 지역에서 카스트 제도의 해체를 가져오기도 했고 인도양 무역에서 인도의 주도권을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근대에 와서 이는 아대륙을 가로지르는 문화적, 정치적으로 가장 격렬한 단층선을 만들어내기도 하였죠. 7세기 아랍 군대가 페르시아와 시리아, 이집트를 동시에 석권한 것은 이집트와 시리아에 있어서는 유럽 쪽 지중해 세계와의 연결을 끊어버린 재앙이기도 했으나 그간 단절되어 있었던 페르시아와의 통합으로 새로운 이슬람 문명을 만드는 주축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듯이 말입니다.

여하간 이슬람이 갖는 이런 다양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수많은 의의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역시 전근대 시기에 수많은 비국가 사회들을 국가 사회에 포섭시킨 일종의 문명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마와 한이라는 고전시대의 거대제국들이 등장하고 주변 지역으로 문명의 확산이라는 파급효과를 일으키면서, 이전에 비해서 유라시아의 많은 부분이 국가 사회 내부로 포섭되었지만 여전히 유라시아의 대다수 지역은 국가 사회로 포괄되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유목, 수렵채집, 원시농업 등에 의존하는 지역이었죠. 하지만 고전시대의 붕괴 이후 유라시아의 많은 지역이 국가 사회가 만들어내는 중력장에 이끌려 들어갔습니다. 여기에서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이 이슬람이었습니다. 물론 기독교 문명권은 중세온난기의 힘을 빌려 동유럽, 북유럽, 러시아에 이어 그린란드까지 문명사회를 확대시키기도 했고 중화제국도 그 거대한 중력장을 통해 더욱 많은 지역을 천자의 관료제 아래에 포섭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들은 근본적으로 생산성 높은 농경이 퍼져나간 곳들이었습니다. 이동생활을 유지하고 부족적 전통이 강한, 현대에도 문명화시키기에 가장 어려운 지역에 이들 유럽과 중화 문명이 확산되는 건 이들 문명인들, 정확히는 러시아인들과 중국인들이 현지인들을 문명화시키는 과정을 생략하고 직접적으로 이주를 시작한 17세기 말부터였습니다.


하지만 이슬람은 이런 무법지대를 최소한의 법과 문명세계의 상식이 통하는 곳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범위도 실로 광범위했는데 서쪽과 남쪽으로는 사하라 사막을 넘어 나이지리아와 수단 북부, 그리고 아라비아 반도와 중앙아시아의 스텝 지역, 그리고 동쪽 끝에는 인도네시아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슬람 세계는 이집트에서 페르시아까지 이어지는 핵심부를 중력의 중심으로 만들고 이들 주변부 세계를 통합하면서 이들 사회를 국가 사회로 통합해내었던 것입니다.


1. 문명화 과정으로서 이슬람화의 특성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했을까요? 우선 아라비아 사회가 이슬람을 어떻게 수용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들여다볼까요. 서양 핵심부에서 가장 선진적인 두 지역인 지중해 동부와 페르시아는 헬레니즘 시대에만 해도 하나의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국가가 형성되고 지중해 동부는 로마 제국에 끌려들어가자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중동이 반으로 조각나버린 것입니다. 이 라이벌 관계는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의 형태로 더욱 격렬해지는데 가장 큰 피해자들 중 하나는 동방무역에 종사하던 상인들이었습니다. 과거에 로마, 이집트와 페르시아, 인도를 연결하며 높은 수익을 올리던 상인들은 두 국가의 국경지대가 황폐해지면서 새로운 무역로를 물색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무역로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곳이 바로 이슬람 세계의 성도가 된 메카였습니다. 상업네트워크에 종사하기 쉬웠던 아랍 유목민들은 집약적 농경전통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지만 무역 결절지라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상업과 도시의 전통을 독자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라비아 반도는 국가 사회에 본격적으로 포섭되지 못했던 사회라 두 제국의 전쟁이 불러일으킨 참화를 피해갈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비국가 사회들은 일정 정도의 부를 축적하게 되면 조직적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계층분화로 사회통합이 약화되면서 내부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또한 좁은 공간에 많은 인구가 몰리는 도시를 관리하는 것은 기존 부족들의 조악한 갈등 관리와 시스템 관리 능력으로는 감당을 할 수가 없던 것이었죠. 두 가지 문제점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이 도시 빈민 문제인데 이들이 쿠라이쉬 부족의 기득권에 대항하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것이 당시 메카의 상황이었습니다. 메카에서 교역을 통해 축적된 부, 즉 기회는 초기 농업 사회가 확대되고 도시들이 건설되면서 만들어낸 도전과 유사한 도전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무함마드는 이 도전을 놀랍도록 잘 활용했는데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교의를 제시하여 아래로부터 아랍인들을 통합해내고 위로부터 법과 시스템을 만들어내어 새로운 질서를 부여했습니다. 부족적 갈등으로 얼룩져있고 비잔티움과 페르시아 사이에서 용병으로 참가하거나 대리전쟁이나 하던 아랍인들은 무함마드의 이슬람 공동체와 그의 카리스마 아래에서 그 이전에 비했을 때 훨씬 단결된 무장조직으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무함마드 사후에 이슬람 공동체는 비잔티움과 페르시아의 행정조직을 이어 받은 칼리프 국가로 이행했으며 대다수의 아랍인들이 국가 사회에 포괄되었습니다.


즉 이슬람은 얼핏 보면 무함마드라는 개인이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여 만들어낸 것 영적 움직임인 것 같고 그런 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당시 존재하던 사회적 도전에 아랍인들이 대응한 하나의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일반화해서 말하자면 농업 사회라는 안정적 기반이 부재하거나 미약한 상황에서 농업 외적인 요인으로 증대한 사회적 복잡성을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으로서 초기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동의 하에 권력을 만들어내고 위에서 시스템을 구성원에게 강제할 논리가 바로 이슬람이었던 것입니다. 마치 거대한 수리통제 체계를 관리할 관료제가 특징인 중국의 논리가 옥황상제를 위시한 천상의 관료제였고, 자그마한 지역을 기반으로 극히 분권화되었으나 문화적으로는 초국가적이었던 유럽의 정치지형에 최적화된 인민 통제 시스템이 가톨릭 교회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슬람이 중세 이래로 계속하여 아프로-유라시아 권의 비국가 사회들을 성공적으로 국가 사회의 내부로 포괄할 수 있던 이유는 바로 그 비국가 사회들이 이슬람이 태동하던 아랍 사회와 비슷한 사회적 도전을 받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조직화된 국가의 관료 행정 체계가 작동하기 힘들었던 유목사회들도 인구 증가로 인한 고충을 덜기 위하여 문명 세계와 다양한 형태로 얽혀들어 갔는데 이들 사회를 규율할 최적의 문명 사회의 논리는 이슬람의 논리였습니다. 키예프 공국이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고 주치 울루스가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각각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빗대어 봤을 때 최적의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에게 교구를 설치하고 농민들을 빡빡한 사회적 규율로 묶어내던 가톨릭의 방식, 천자가 있는 수도로 모든 권력이 집중되는 강력한 관료제를 자랑했던 중국의 방식이 통했을 리가 없죠. 현지 부족장, 동네 왕초들의 반야만적인 논리를 존중해주되 문명 세계의 세련됨과 부에 지속적이고 끈끈한 접촉을 가능하게 해주고, 사회를 통제할 규율도 취사선택 할 수 있는 이슬람이야말로 저런 애매한 지역들에게 정말 적합한 종교였던 것입니다. 지금에서야 엄청 귀찮을 구습으로 보이지만 사실 메카 방향으로 절을 하라는 것, 한 달은 낮에 굶어야하는 것, 자선세를 내야하는 것 등은 농경 주기와 관련하여 계속 사회적 규범들을 주입해왔던 동서 유라시아의 양 극단의 문명화 논리와는 차별화되는 간편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메카로 일단 한 번은 와야 한다는 규정은 상업 네트워크로의 접속을 개방하는 것이어서, 상업 중심의 비국가 사회들에게 큰 어드밴티지로 작용했습니다.


1.1. 문명화 과정의 부산물로서 이슬람의 관용


소위 말하는 이슬람의 관용이라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다시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무슬림들이 정말 평화로워서 관용을 베푼 것일까요? 로마인들이 툭하면 콜로세움에서 사자 밥주기 쇼 같은 걸 하고 중국인들도 참 창의적이고 기상천외한 형벌들을 만들어내는 폭력배들이었지만 적어도 이들은 극한의 환경에 어울리는 극단적인 폭력과 야만성을 보여주지는 않았지요. 어쨌든 성문화된 법전이 있었고 그에 맞춰서 법리라는 것이 있던 곳들이었습니다. 흔히 친이슬람 학자들이 옹호하는 것처럼 이런 이들보다 아랍인들이 평화를 사랑해서 관용을 베푼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슬람 세계는 확산을 할 때마다 두 가지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첫째로 자신들보다 더욱 문명화의 역사가 길었던 곳들을 정복했을 때였습니다. 이 시대는 압바스 칼리프 시대에 대충 종료되었는데, 그들은 비국가 사회에서 국가 사회로 전환하기 위하여 국가 사회의 새로운 통치 노하우를 배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즉 무턱대고 다 쳐죽이는 것이 아니라 현지 문명을 존중하고 협력을 받아내야 했던 것입니다. 아랍인들이 관용을 베풀고 말고 할 계제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아랍인들이 충분히 문명화 되고 문명세계의 규범들을 다룰 능력이 생기게 되었을 때, 조로아스터교도들과 기독교, 유대교도들은 결코 이전과 같은 존중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몽골의 침략으로 인한 지역사회의 해체로 상당수가 무슬림으로 개종하게 되는데 만약 아랍인들이 여전히 이들을 필요로 했다면 개종은 훨씬 더뎌졌을 겁니다.


둘째로 압바스 시대가 몽골의 정복으로 끝나고 세계화의 시대가 열렸을 때, 새로운 비국가 사회들을 국가 사회로 포섭해나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무리하게 국가 사회의 논리, 즉 그들 입장에서는 이슬람의 논리를 강제할 능력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우선 이런 곳들로 이슬람의 확산을 이끈 사람들은 정치권력과 군사력이 아니라 상인들과 그들의 네트워킹 능력이었죠. 이슬람은 여명기에 아랍인들을 포섭하던 방식대로 자바인들과 하우사인들을 포섭하면 그만이었습니다. 현지 권력에 무리하게 도전하는 건 애초에 이슬람의 방식이 아니었고 그런 방식이 아니었다면 현지 권력들이 이슬람을 믿을 이유도 없었습니다. 이슬람의 관용이라는 것도, 만약 그런 게 유의미하게 존재한다면 이슬람 세계의 확산 과정에서 발생했던 사회경제적 기회와 도전에 대처하던 방식이었을 뿐입니다.


1.2. 이슬람화의 한계와 문명화의 영향


이슬람이 국가와 비국가의 애매한 경계에 걸쳐 있던 곳에 적합했다는 건 터키와 같이 인구학적 대변동을 겪은 사회, 혹은 농촌사회와 유리된 상업도시가 정치적 권력을 확보하던 인도양 사회들이라는 예외를 제외하고는 정교한 농경전통을 확보한 사회에서 이슬람을 받아들인 곳이 전무하다는 것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베리아 반도와 발칸 반도에서 이슬람은 중앙아시아와 동아프리카에서 끼쳤던 영향에 비하면 매우 제한적인 영향만을 끼쳤을 뿐이었죠. 심지어 사방이 이슬람으로 포위된 에티오피아에서도 이슬람은 장벽에 부딪혔습니다(물론 이 경우는 기독교 국가들의 지원이라는 변수도 상당했습니다만). 동아시아에서는 이슬람의 동진도 스텝지대가 끝나는 하서회랑이 나오면서 동시에 중단되었습니다. 그곳들은 이슬람보다 더욱 체계적인 사회 규율의 논리가 작동하는 곳이었습니다. 역으로, 중국과 러시아라는 농경제국들은 내륙에서 이슬람을 계속 밀어낼 힘도 갖고 있었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베트남과 태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죠.


국가 사회가 지속적으로 비문명, 비국가 사회를 파고들면서 확장되던 근세까지는 이 방식은 이슬람에게 놀라운 이점이 되어주었다고 봅니다. 무수히 많은 야만 사회들에게 고대 중동 문명의 총아가 집약된 이집트-메소포타미아-페르시아의 전통이 흘러 들어갔으며 야만 사회들의 이국적 산물들이 페르시아의 교역 중심지로 집결했으니까요. 이들은 중심부의 무슬림 상인들에게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안겨다주었고 현지 사회들도 이슬람 세계와의 애매한 연대에서 각종 정치적-경제적 이점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사회에 적용하기 힘들만큼 너무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방식은 그들이 원하던 게 아니었습니다. 현지 지방 권력들과의 타협을 통해 문명과 국가의 논리를 적용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 원하던 바였고 그것이 그들이 유일하게 택할 수 있던 선택지였던 겁니다. 그러나 이런 이슬람의 문명화 방식은 근대로 들어와서 엄청난 재앙의 연쇄들을 낳는 가장 직접적인 전조들 중 하나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현대 이슬람을 둘러싸고 있는 폭력들을 규정하고 있다고 봅니다.


2. 전근대 사회의 다층적 정체성과 근대적 전환


농업문명 시대의 국가는 수도의 미약한 중앙관료조직이 지방의 유력자들과의 불완전한 타협을 통해서 영역 내의 농민들과 상인들에게서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러나 화약무기가 가져온 새로운 군사적 도전과 대서양 경제의 결과로 시작된 경제적 팽창의 결과로 유럽에서는 새로운 국가가 들어서게 됩니다. 현대의 국가 체제와 사실상 동의어라고 할 수 있는 민족 국가였죠. 기존 형태의 국가 시스템으로는 전유럽이 휘말려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더욱 효율적인 자원 동원 시스템을 구축할 급박한 필요성이 생겼죠. 이 도전에 제때 대처하지 못하면 에스파냐처럼 낙후된 상태로 뒤처지거나 심하면 폴란드처럼 나라를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국가들 사이의 처절한 전쟁들이 이어졌으며 이 과정을 통해서 유럽은 중세 시대의 정체성을 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세인들의 세계관이라는 것은, 크리스천돔이라는 매우 거대한 문명권에 속해 있다는 막연한 정체성과 극히 작고 구체적인 지역의 농촌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강한 정체성이 혼합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건 폐기처분 되어 마땅한 것이었다. 나폴레옹 전쟁과 그 뒤를 이은 민족주의의 폭풍을 거치면서 이 과정은 대강 완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촘촘한 행정 조직이라는 비인격적 권력이 추상화된 개인들의 삶에 개별적으로 간섭하는 강력한 정부가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동원을 가능하게 할 정체성의 기반은 기존의 문명권보다는 구체적이되 지역 공동체보다는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개념인 민족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국가적 경쟁 과정 속에서 생존이 위협받게 되는 상황이 일상적이 되자 지방 및 중앙의 정치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일정 부분 포기하면서 새로운 경제적 혁신과 관료기구들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습니다. 찰스 틸리가 말하는 과정이 시작된 겁니다. 이런 근대 민족 국가들은 그렇지 않은 기존의 공물 징수 형태 국가에 비해서 자원 동원 능력이 압도적이었으며 경쟁을 통한 주기적인 군사적 혁신과 경제적 성장을 통해 국가 자체의 역량을 일신하는 데에도 익숙해져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전근대 국가들이 이런 근대 국가들과 맞이하게 되었을 때의 결과는 파멸이었죠. 심지어 가장 효율적이고 거대한 조직을 자랑하던 중국마저도 굴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화약무기의 도래 이후 유럽 국가 경쟁 논리를 빠르게 내재화하여 새로운 경주의 후발주자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성공적인 곳은 주지하다시피 동아시아입니다. 중국의 대혼란기들을 제외한다면, 한국, 일본, 대만은 유럽에 비해서 국민국가 형성 과정에서의 폭력은 훨씬 더 적었습니다. 동아시아는 전근대 사회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정교한 관료 시스템, 인민 통제 시스템을 갖추었기 때문에 근대적 행정조직으로의 전환이 더 용이했습니다. 애초에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입니다. 중국이 중심이 되는 안정적인 국제 체제가 낳은 수백년 간 안정화된 국경선 때문에 중일전쟁 같은 예외상황이 아니라면 인구집단 사이의 충돌도 적었습니다. 동아시아인들은 막연하고 가장 큰 범주인 중화 문명권에 속한다는 정체성과 가장 작고 구체적인 전통 농촌 공동체의 정체성에 동시에 의존했다는 점은 유럽과 비슷하였으나 위의 요인들 덕분에 하나가 더 추가될 수 있었습니다. 조정과 한 나라의 신민의 정체성이 일찍부터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근대 국가의 정체성으로 전환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었죠. 이런 유리함은 동아시아의 농업경제 형태가 극히 집약적인 형태로 운영되며 매우 정교한 관리를 필요로 하는 쌀농사 지대였기 때문에 형성될 수 있었을 겁니다.


2.1. 이슬람의 전환과 실패, 그리고 원인


반면 이슬람은 어땠을까요? 근대 국가로의 고통스러운 전환기에 이슬람 문명권도 각자 대응을 하였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종교와 민족을 초월하는 보편 제국에서 나중에는 무슬림, 그리고 말기에는 투르크인들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카자르 왕조와 팔레비 왕조의 이란도 같은 노력을 하였고 어느 정도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장 곤란한 곳은 아랍이었는데 이 곳에서는 아랍 민족주의라는 형태로 초국가적 민족주의 운동이 지역을 수십년 간 뒤흔들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내 유럽 열강이 정해준 국경선 대로 국민 국가들이 형성되어 갔으며 이들은 모두 새로운 정체성 속으로 뿌리를 내리고...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이들 지역에 확고한 국민 국가 정체성이 뿌리를 내렸으면 이런 글을 쓰고 있지도 않겠죠. 이들 국가는 전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심지어 일정 부분 성공을 거뒀다는 터키와 이란에서도 이슬람 때문에 온갖 소요들이 벌어졌고 정권마저도 엎어졌습니다. 무슬림 테러 조직은 나이지리아에서 아프가니스탄과 인도네시아, 타지키스탄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습니다. 폭력을 관리하는 조직으로서 국가의 역할은 이슬람권에서는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가장 표면적인 부분부터 살펴보고 그 다음에 원인을 캐보는 식으로 살펴보죠. 왜 이들은 이슬람이라는 이름으로 테러를 할까요? 당연히 이들의 정체성에 이슬람이 차지하는 중요성이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테러 조직들과 비슷합니다. 일세를 풍미한 러시아의 마르크시스트 테러조직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계급정치에 두었습니다. 한국의 민족주의 테러조직들은 조선인으로 두었죠. 문제는 왜 이 동네는 계급적, 혹은 민족적 정체성으로 테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종교를 일차적 정체성으로 삼아서 테러를 하냐는 점입니다. 그것이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본성이라서? 무함마드가 7세기에 말한 말들은 이교도에 대한 성전을 권장하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만 왜 기독교 테러 조직은 그렇다면 그렇게 적을까요? 잘 아시다시피 구약만 봐도 군국주의 호전광들이 따로 없어요. 종교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이슬람과 기독교는 공유하는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뿌리가 같죠.


제 생각에 핵심적인 문제는 이전에 쓴 글에서 나왔듯이 이슬람이라는 지역이 문명화를 시킨 지역이 매우 애매한 지역들이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슬람이 확산된 곳은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둔 농경 전통이 그다지 강하지 않고 그 대신 부족적 전통이 강하던 지역들이었습니다. 이들 사회는 전근대에도 강력한 정부구조가 등장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체 이슬람 국가를 통틀어서 가장 강력한 행정조직과 군사력을 뽐내던 오스만 제국만 해도 이집트를 몇백년 전부터 이집트를 다스리던 맘룩 조직을 통해서 대리통치를 맡기던 실정이었죠. 따라서 근대까지도 이슬람권의 사람들에게는 최소한의 국가적 정체성만이 있었다고 봐야할 겁니다. 대신 중세 유럽의 기독교권과 마찬가지로 매우 막연하고 넓은 이슬람 문명에 속해 있다는 정체성, 그리고 구체적이고 일상생활과 맞닿아 있는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정체성만이 지배하던 곳이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고도화되지 못한 농경 사회, 그리고 여전히 강력한 사회경제적 힘을 지니고 있던 유목 전통이 빚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유럽과 동아시아는 조금 더 뿌리 깊은 농업경제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에 후에 국가적 정체성으로 대륙을 재편하는 것이 가능했으나 이슬람은 그렇게 될 수가 없었습니다. 각지의 지방 유력자들을 파괴하고 국가 행정 중심의 시스템으로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소련과 중국의 지배와 같은 예외가 아니고서야 모두 실패 했죠. 기존의 지방 유력자들 사이의 정치적 타협 위에 관료제를 나눠먹는 식으로 국가가 운영되었으며 그 중 군권을 놓고 경쟁이 매우 치열했습니다. 이런 경향이 가장 심한 곳은 생태적으로 가장 한계에 몰린 지역인 소말리아, 예멘, 리비아이고 이런 경향이 가장 적은 곳은 (중앙아시아를 제외하면) 농경이 가장 용이한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였다는 점은 이 주장의 근거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헬슬람과 테러


지금 가장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는 내전들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시리아 내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정체성 구조 위에서 인구압으로 인한 기근 등 요인으로 지역사회가 파괴되었다면 이들이 의지할 정체성은 없어집니다. 이제 국가 정체성이 만들어질 지리적, 경제적, 정치적 조건이 되지 않았기에 문명적 정체성 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거기에 생태적으로 한계에 몰려 농촌이 붕괴되고 이들이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다면, 자신의 부족적, 종교적 정체성에 집착하여 갈등이 점화됩니다. 특히 경제가 쇠퇴를 면치 못하여 분배할 자원이 줄어든다면 갈등은 더욱 격화되겠죠. 결국 예멘과 리비아, 소말리아의 부족내전, 그리고 시리아의 종교집단 간 치열한 내전은 근본적으로 건조기후의 생태붕괴가 추동하고 건조기후에 적합한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강화시켜준 셈이 되겠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닙니다. 이 내전들은 주위 지역으로 마치 전염병이 퍼지듯 확산되어 역내 불안정성을 키워줍니다. 에스파냐 내전은 에스파냐에만 국한된 사건이었고 한국전쟁도 한반도를 벗어나지 않았지만 이슬람의 폭력은 국경과 대륙의 경계가 없습니다. IS가 시리아에서 공격을 받으면 다음 날 프랑스에서 폭탄이 터지죠. 저는 여기서도 건조기후와 일종의 불완전한 문명화가 만들어낸 정체성의 불균형은 이슬람의 폭력을 확산시키는 데 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느슨하게 공유하는 문명적 정체성은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시켜줍니다. 20세기 초반 한국과 비교를 해볼까요. 당시 한국인은 일본 제국의 식민화 과정 동안 많은 사회변동을 겪었으며 많은 한국인들이 일차적 정체성인 지역사회를 떠나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으로 정착을 했습니다. 이들은 특히 일본에서 사회 하층민을 형성하였는데 이들이 안고 있는 사회적 피해의식과 절망은 민족주의적 테러에 이끌리게 되는 강력한 감정적 동인이 되어주었죠. 그러나 한국인들은 그 지역적 확산 범위가 크지도 않았고 지역사회의 해체가 그렇게 광범위하지도 않았기에 그 테러는 지속적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공유된 문명적 정체성이 있습니다. 뿌리 깊은 농경 전통에 근거한 확실한 문명화가 그 뒤의 국가 단위의 근대화로 전환되지 못하자, 지역공동체가 생태붕괴와 정치적 갈등, 빈곤으로 파괴되는 과정 속에서 무슬림들의 자의식은 더욱 강해졌을 겁니다. 이런 공유된 정체성은 새로운 테러와 전쟁의 네트워크를 확산시키는 데 매우 용이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을 소련이 침공하자 수많은 무슬림들이 의용병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간 것은 좋은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테러의 허브들에서 몰린 각지의 “국제여단”들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서 다시 폭력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양의 되먹임 과정을 거치는데 이것이 20세기 말에 가속화된 생태위기와 맞물리면서 이슬람의 국경지대가 피로 물들게 되는 단초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생태위기와 사회 해체의 지옥을 피해서 유럽으로 떠난 사람들은 이 모든 악조건들을 귀신같이 섞어 놓은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1. 이들은 지역 사회 정체성이 없죠. 난민 혹은 이주민들의 자식들이 부모 세대의 고국에서 기대하던 공동체 내부의 상호부조를 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2. 이들은 국가 정체성이 극히 미약합니다. 하다못해 시리아에 사는 순니파나 시아파 아랍인은 내가 시리아 사람이다라고 말은 할 수 있겠지만(물론 그다지 의미는 없을 겁니다) 파리나 브뤼셀에 산다면 뭐라고 답할까요? 프랑스인이나 벨기에인이라고 선뜻 답할 수 있을까요?


3. 이들에게 남은 것은 결국 자신들이 이슬람 세계의 일원이라는 극히 막연한 정체성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무슬림 테러 조직은 절망한 도시의 무슬림 빈민들을 포섭하며 폭력의 씨앗들을 뿌리게 됩니다. 이들이 현대 IS의 자양분이자 근래 유럽에서 폭발하는 수많은 폭탄들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중동을 중력의 중심지로 하여 다시 모여들고 있고, 그 네트워크는 이슬람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로 다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비교적 정부가 안정적인 인도네시아까지도 말이죠.


번외. 아프리카와 인도


성공 사례들인 유럽과 동아시아 말고 다른 실패사례들도 살펴보고자 했는데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어서 뒤에다가 써봅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도 생태적 붕괴로 사회가 박살나고 폭력적 갈등이 분출한 경우가 많습니다. 르완다, 콩고 등이 그렇죠. 그러나 이들의 폭력은 외부로 확산될 수가 없었습니다. 제 생각에 아프리카는 국가 정체성이 없는 건 이슬람권과 마찬가지였지만 여기에는 농업경제의 전통이나 문명화의 과정이 중동-이슬람권보다도 더욱 미약하게 작용을 하여 문명적 정체성마저도 없었기 때문 같습니다. 따라서 생태적 붕괴로 인한 지역 사회의 해체는 그냥 그 곳에서 죽고 죽이는 식으로 끝나게 된 것이죠. 다만 이슬람권과 닿아 있는 곳은 이 과정 속에서 이슬람과의 충돌을 통해 더욱 고통을 받고 있기는 합니다.

인도는 재밌는 예외사례인데 이 곳도 마찬가지로 국가 정체성이 사실상 없었으나 첫째로 지역사회가 생태붕괴로 해체되지 않았다는 점이 주효했을 겁니다. 이슬람권에서 오는 폭력 네트워크의 전파는 파키스탄과의 갈등으로 단순화될 수 있었죠. 그리고 문명적 정체성은, 어차피 인도 문명은 인도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그걸 그냥 국가적 정체성으로 대체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즉 이들은 조직화는 못 되었으나 세계종교가 아니었기에 안정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약: 이슬람 때문에 테러가 나는 게 아니라, 땅이 안 좋은 곳에 이슬람이 최적화 되어 있고 땅이 안 좋다보니 계속 헬. 그러다보니 이슬람이 헬슬람으로 수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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